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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악

{음악상식} W. A.MOZART-모차르트의 오페라

by hellosseung 2024.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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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LFGANG AMADEUS MOZART

볼프강 아마데우스모차르트
출생: 1756년 1월 27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사망: 1791년 12월 5일. 오스트리아 비엔나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오페라 역사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베르디와 바그너를 포함한 다른 위대한 오페라작곡가들은 오페라에서만 그들의 족적을 남겼지만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모든 종류의 음악에 걸쳐 다 발휘되었다.

어쨌든 그는 언제나 오페라에 대한 특별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독창적인 재능이 있었다.

그의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그는 오페라 양식을, 이전 형태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시켰다.


노래하는 목소리가 갖는 감정의 힘을 이용해 기존 오페라세리아와 오페라부파의 주인공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작곡가는 모차르트 이전에는 없었다.

그는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여자는 다 그래」, 「마술피리』 같은 걸작 오페라로 한층 더 나아갔다.

도전적인 대본에 영감을 받아서 각 배역들을 미묘한 관현악 기법, 화성적으로 야심찬 레치타티보, 인상적인 아리아,

복잡한 구조의 중창들을 이용해 완성도 있게 그려냈다. 이렇게 최고봉에 이르기까지 25년이 걸렸다.


그의 소중한 재능은 즉각적으로 그의 아버지가 알아챘다. 그의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에서 존경받는 음악가였고, 모차르트 어린 시절에 작곡도 도와주었다.

모차르트는 처음에는 연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뮌헨의 바이에른 궁에서 그의 누이 마리아 안나와 함께 하프시코드를 연주한 것이 5세 때의 일이다. 8세 때는 유럽 전역의 주요 도시로 3년간에 걸친 '음악신동 연주여행'을 했다.
오페라가 이탈리아 밖에서도 전례 없이 유행함에 따라 모차르트도 곧 그 분야에 관심을 쏟았다.

1767년 잘츠부르크에 돌아와서 그의 첫 번 째 오페라인, 라틴어로 된 3막짜리 막간극

『아폴로와 히아킨투스Apol-1o ct Hyacinthus.를 썼다.

 

그 다음 해는 잘츠부르크에 있는 대주교의 관저를 위해서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부파인 「가짜 바보La finta semplice」 를 썼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모차르트는 비엔나에서 독일 징슈필인 「바스티엔과 바스티엔느 Bastien und Bastienne」를 발표했다. 13세가 되기 전 그는 3개의 현저히 다른 양식과 다른 언어를 이용해 오페라들을 작곡했다.

이탈리아는 여전히 오페라의 진정한 본고장으로 남아 있었고,

그래서 모차르트도 그곳에 서 교육을 마치고 활동도 해서 유명세를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769년도 후반기부터 15개월을 이탈리아에서 보냈다. 그는 우선 대위법 공부를 시작했다

대위법이란 둘 이상의 각기 다른 성부들이 동시에 연주되면서 각 성부의 선율들은 독립성을 유지하는 반면,

동시에 울리는 화음도 잘 어우러지게 만드는 기술이다. 그러고는 개인 음악회를 열어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고,

그 결과 밀라노 왕립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될 오페라세리아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를 위촉받았다.

그는 1772년 「루치오 실라」를 발표하기 위해서 그곳으로 돌아갔고 어린 거장트로'이라고 갈채를 받았다.

잘츠부르크에서의 날들


하지만 그 후 9년 동안 모차르트에게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1775년에 쓴 오페라 「가짜 정원사와 『양치기 임금님」이 그 기간 동안에  쓴 전부였다.

기악음악과는 달리 오페라는 단순히 작곡 위촉을 받는것 뿐 아니라 대본작가와 가수들이 필요하다.

그런데다가 잘츠부르크에는 오페라 연주에 적합한 극장이나 오페라 극장이 없었다.

모차르트는 궁정과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로서 바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점차 그 도시를 떠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내가 얼마나 잘츠부르크를 증오하는지 알지?'라고 썼다.
마침내 1781년 모차르트는 뮌헨에서 위촉받은 것으로 첫 번째 성숙된 작품인 「이도메네오, 크레타 왕을 작곡했다.

그때까지 모차르트는 과거의 모든 음악들을 이미 공부했고 새로운 미래의 작품을 작곡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해 후반기에 영원히 잘츠부르크를 떠남으로써 대주고 콜로레도와의 관계가 끊어지고,

모차르트는 그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지배하고 있던 아버지의 지휘하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오페라의 거장


이후 10년간은 모차르트를 전설적 인물로 신성시 하게 만든 시기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에게는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이기도 했다.

1782년 그는 소프라노 가수인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하였다.

모차르트는 그녀의 누이에게 이미 구혼을 했었다.

그의 아 내는 자주 아팠고, 모차르트는 빚으로 허덕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모차르트가 몹시 원했던 궁중작곡가로서의 자리는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굳게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작곡에 몰입하여 많은 작품을 만들었고, 다른 도시들로 지치도록 많은 여행을 다녔다.

그는 1782년 7월 광대극풍의 징슈필인 『후궁으로부터의 유과」로 비엔나에서 즉각적인 성공을 거둠으로써

비엔나 오페라계에 당당히 입성하였다. 1784년 이탈리아 시인이자 대본작가인 로렌초 다 폰테와의 만남으로

모차르트는 그의 생에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모차르트는 그의 오페라 주제를 직접 선택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폰테의 과감한 대본으로부터 강한 힘을 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주인에 대한 복수심으로 인해 모반을 꾀하는 하인을 소재로 계층간의 충돌을 묘사했고,

「돈 조반니 에서는 여성을 희롱감으로 삼는 귀족을 찬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응징했으며,

「여자는 다 그래」에서는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변덕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다 폰테 의 대본은 이렇듯 과감한 주제를 다루었다. 하지만 이 오페라들을 모든 오페라 연주 목록 중에서 으뜸으로 여기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혼란스럽기도 하며 때론 너무도 친밀한 음악 덕분이다. 

 

짧은 생애
그의 생의 마지막 해인 1791년 모차르트는 「마술 피리」로 최고의 오페라 대열에 네 번째 보석을 더하였다.

이 작품을 쓰는 동안 『티토 왕의 자비」를 프라하의 레오폴드 2세의 황제 대관식을 위해서 서둘러 썼다.

그는 오페라세리아 『티토 왕의 자비」 초연에 이어, 9월 30일에 공연 될 「마술피리』 를 완성하기 위해

서둘러 비엔나로 돌아왔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지 않아서 전염병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열을 동반한 병이 엄습했다.

모차르트 는 그의 36번째 생일을 7주 남긴 1791년 12월5일 사망했다. 

그의 마지막 결작 「레퀴엠」은 미완성인 채 남겨졌다.



 

 

MITRIDATE, RE DI PONTO -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

✍️3막의 오페라세리아. 3시간 30분 🎵1770년 12월 26일. 밀라노 대공 궁정극장
⏳1770년 📖비토리오 아메데오 치냐 산티
(라신의 비극 「미트리다테」의 주세페 파리니의 번역본을 기초로1767년 처음 오페라로 만들어짐)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 오스트리아의 롬바르디아 주지사의 위촉으로 모차르트가 14세 때 작곡한 작품이다.

당시 관례대로 작품 위촉을 받은 모차르트에게도 대본이 주어졌는데, 3년 앞서 퀴리노 가스파리니가 같은 대본으로 작곡했었다. 모차르트의 공연은 좋은 반응을 얻었다. 모차르트의 빛나는 콜로라투라 창법의 아리아들을 들은 관중들은 '거장 만세, 거장 만세'라고 환호했고, 새로운 작품을 위촉받았다. 하지만 그 후 2세기 동안 「미트리다테는 거의 잊혀졌다.

 

* 이 오페라는 모차르트에게. 가수야말로 오페라에서 진정한 스타라는 교훈을 주었다. 구글 리엘모 에토레는 「미트리다테의 시작 아리아를 3회나 다시 쓰라고 요구했고, 심지어 초연때는 마지막 아리아를 가스파리니의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로 대체해서 부르기까지 했다.*

주요 등장인물
미트리다테 테너

폰토의 왕
아스파시아 소프라노 

왕의 원치 않는 약혼녀 
시파레 소프라노 

미트리다테의 아들.
아스파시아를 비밀리에 사랑한다.
파르나체 알토 

미트리다테의 또 다른 아들 
이스메네 소프라노 

그리스 공주

 

 

 


LUCIO SILLA - 루치오 실라

✍️3막의 오페라세리아. 3시간 30분 🎵1772년 12월 26일, 이탈리아 밀라노 대공 궁정극장
⏳1772년 📖조반니 데 카메라

 

「루치오 실라」는 「미트리다테」의 성공으로 대공 궁정극장으로부터 위촉받은 작품이다.

모차르트에게 이 오페라의 아리아 18곡을 쓰는데 불과 한 달밖에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는 풍부해진 경험을 가지고 주요 등장 인물의 성격을 음악으로 어떻게 한층 더 증대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의 음악은 잘짜인 드라마와 잘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루치오 실라는 보통 정도의 성공만 거두었고, 모차르트는 곧바로 이탈리아를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 「루치오 실라」는 모차르트의 후속 오페라세리아 때문에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지만 정치적인 주제가 요즘 시대극으로 알맞기 때문에 최근 들어 유행하게 되었다.*

주요 등장인물
루치오 실라 [테너]
 

로마의 독재 집정관 
지우니아 [소프라노]
 

실라의 욕망의 대상 
체칠리오 [소프라노]
 

반체제 원로원 의원이자 지우니아의 약혼자 
루치오 친나 [소프라노]
 

체칠리오의 친구 
첼리아 [소프라노]

실라의 누이동생이자 친나의 신부




IL RE PASTORE - 양치기 임금님

✍️2막의 세레나타. 2시간 🎵1775년 4월 23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관점
⏳1775년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

 

『양치기 임금님」은 잘츠부르크의 콜로레도 대사제가 오스트리아의 대공 막시밀란 프란츠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서 위촉했다. 이 행사를 위해서 모차르트에게 1751년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가 쓴 오페라세리아 대본이 주어졌다.

이미 수십 명의 작곡가들이 이 대본으로 작곡했었다.
이 오페라에는 몇 개의 아름다운 아리아와 합주곡들이 있지만 그는 이 오페라에 이어서 다른 위촉을 받지는 못했다.

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다른 오페라를 쓰게 되었는데, 이 작품이 그의 무대음악 중 첫 번째 절작으로 꼽히는 「이도메네오」다.

 

*젊은 오스트리아 대공 앞에서 공연되었던 『양치기 임금님」은 합스부르크가의 정복을 풍자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도 있었지만 익살맞은 줄거리와 쾌활한 음악 덕분에 기분을 상하게 할 여지가 많이 감소되었다. *

 

주요 등장인물
알레산드로 [테너]
 

알렉산더 대왕
아민타 [소프라노]

장래 시돈의 왕 
엘리사 [소프라노]
 

아민타의 연인 
타미리 [소프라노]
 

강탈자 스트라토의 딸

 




IDOMENEO, RE DI CRETA - 이도메네오, 크레타 왕

✍️3막의 음악극, 3시간 30분  🎵1781년 1월 29일, 독일 뮌헨 궁정 가극장
⏳1780~1781년 📖지암바티스타 바레스코
(원작 : 앙드레 캉프라가 음악을 붙였던 앙투안 
당세의 1731년 대본 「이도메네ldomenee」 )

 

「이도메네오, 크레타 왕」은 모차르트의 세 번째 걸작 오페라세리아로서 앞으로 나올 대작들을 예견케 해주는 작품이다.

오랫동안 기악음악 작곡에 몰두한 후 쓴 작품으로 이 곡은 매우 아름답고 열정적인 아리아들, 특색 있는 4중창, 힘찬 합창, 풍부한 관현악 음색들이 돋보인다. 처음엔 단 3회밖엔 공연되지 않았고, 20세기 중반까지도 영국과 미국에서만 공연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이 곡은 모차르트의 주요 작품으로 여겨진다.

*모차르트는 25세 때도 여전히 그의 배역가수를 선택하는데 힘이 미약했다.

「이도메네오 초연 당시 이도메네오와 이다만테 역을 맡은 가수들을 두고 모차르트는 '역대의 배우들 중 최악의 배우들'이라고 그 상황을 설명했다. *

주요 등장인물 
이도메네오 [테너]

크레타 왕
이다만테 [메조소프라노 또는 테너]

 이도메네오의 아들. 후계자 
일리아 [소프라노]
 

트로이 공주 
엘레트라 [소프라노]
 

그리스 공주 
아르바체 [테너]
 

이도메네오의 친구 
제사장 [테너]






LE NOZZE DI FIGARO - 피가로의 결혼

✍️4막의 오페라부파, 3시간 🎵1786년 5월 1일, 오스트리아 비엔나 궁정극장
 ⏳1785~1786년 📖로렌초 다 폰테
(원작 : 보마르세의 1784년 희곡 
「바보 같은 하루, 또는 피가로의 결혼」)

 

「피가로의 결혼』은 많은 사람들이 모차르트의 오페라 중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역대 모든 오페라 중 가장 완벽한 오페라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모차르트와 로렌초 다 폰테가 처음으로 함께 만든 이 작품은 아주 흥미로운 줄거리와 숨죽일 만큼 경이로운 아리아들과 중창들이 잘 어우러진다. 이 작품에서는 백작의 거만함, 백작부인의 우울함, 피가로의 격분, 수잔나의 장난기 같은 주요 등장인물의 심리상태와 기질을 묘사하는 데 음악이 중심적 역할을 한다. 많은 해학과 혼돈 가운데, 모차르 트의 음악은 포장되지 않은 진솔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낸다. 한 발 더 나아가 모차르트는 아리아와 레치타티보를 매끈하게 잘 혼합시켜서, 마치 레치타티보들이 세트를 이루는 것처럼 선율적으로 들린다. 오늘날 「피가로의 결혼』은 오페라 공연 목록의 초석으로 자리하고 있다.

*보마르셰의 희극 「피가로의 결혼」은 불온한 작품으로 여겨져 금지되었었다. 하지만 정치 적 풍자 부분과 계층간의 적대감을 성별 대결 구도로 바꿈으로써 모차르트와 다 폰테는 이 희극 오페라를 쓸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아냈다. *

 

주요 등장인물
알마비바 백작 [바리톤]
 

스페인의 호색가 
귀족 알마비바 백작부인 [소프라노]
 

오랫동안 고통받고 있는 그의 부인 
피가로 [바리톤]

알마비바 백작의 의상담당 시종 
수잔나 [소프라노]
 

파가로의 약혼녀이자 백작부인의 시종 
케루비노 [소프라노 또는 메조소프라노]

 시동
마르첼리나 [소프라노 또는 메조소프라노] 

가정부 
바르톨로 [베이스] 

의사
바실리오 [테너]
 

음악교사




DON GIOVANNI - 돈 조반니

✍️2막의 드라마 지오코소
(희극과 비극의 혼합형).2시간15분 
🎵1787년 10월 29일. 체코공화국 프라하
그래플리흐 노스티체스 국립극장
⏳1787년 📖 로렌초 다 폰테
(원작 : 주세페 가차니가의 1787년 오페라를 위한
조반니 베르타티의 대본)

 

「피가로의 결혼」이 프라하에서 호평받은 후, 이 도시에서 공연 될 「돈 조반니」를 위촉받았다. 모차르트는 다시 다 폰테에게 대본을 부탁했고, 그는 그 즈음 베니스에서 공연된 또 다른 「돈 조반니」에서 줄거리를 따왔다. 다 폰테의 재치와 시름는 모차르트의 재치 넘치는 음악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작품 내용이 여인들을 방탕하게 유혹한 사람이 끝내는 죽음 이외에 죗값을 치를 다른 방법이 없다는 기분 나쁜 이야기지만, 모차르트는 잊혀지지 않는 아리아들과 여러 성부들의 복잡하면서도 조화된 중 창들을 이야기의 희극적 요소와 비극적 요소에 잘 반영하였다. 음악에 배어있는 깊은 인간미는 극적 효과를 더욱 증대시킨다. 따라서 이 오페라에서는 연기로 보여져야 할 부분 중 절반은 음악이 맡아서 해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모차르트는 돈 조반니의 마지막 저녁식사 장면에서 「마술피리」를 포함한 세 편의 동시대 오페라로부터 인용해 넣음으로써 그의 장난기를 보여주었다. 레포렐로는 「피가로의 결혼」이 인용되는 부분에서는 이를 알아채고 "나는 이 작품을 너무 잘 알지" 라고 말했다.*

 

주요 등장인물
돈 조반니 [베이스 또는 바리톤]
 

방탕한 젊은 귀족 
기사장 [베이스]
 

돈 조반니에게 살해당함 
돈나 안나 [소프라노]

기사장의 딸 
돈 오타비오 [테너]
 

돈나 안나의 약혼자 
돈나 엘비라 [소프라노]
 

돈 조반니에게 버림받은 여인 
레포렐로 [베이스]
 

돈 조반니의 하인
체를리나 [소프라노]

시골 처녀
마제토 [베이스]
 

체를리나의 약혼자




COSÌ FAN TUTTE - 여자는 다 그래

✍️2막의 드라마 지오코소(희극과 비극의 혼합형)
3시간
🎵 1790년 1월 26일, 오스트리아 비엔나 궁정극장
⏳1789년 📖로렌초 다 폰테

 

「여자는 다 그래」는 20세기가 되기까지는 명작으로 꼽히지 않았다. 탁월한 아리아들과 이중창 그리고 두 개의 비범한 19분짜리 중창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상당히 오랫동안 내용이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무시 당했다. 아무튼 「돈 조반니」에서처럼 남성을 여자를 희롱하는 인물로 묘사하는 것은 수용되었지만, 이 작품에서처럼 여성을 변덕스럽게 묘사하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늘날 이 오페라는 생동감있는 줄거리와 무료함을 달래주는 음악으로 제대로 호평받고 있다. 이 음악은 단순한 희유곡 divertimento 그 이상이다. 배반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느끼는 두려움과 예기치 못한 사랑이 주는 설렘과 감동을 음악 속에 잘 묘사함으로써 음악 자체만으로도 이야기의 현실감을 생생히 느끼게 해준다.

 

*여자는 다 그래」에는 모차르트 자신의 삶이 일부 반영되어 있다. 모차르트는 한때 사랑했던 여인의 동생과 결혼했고, 결혼 후 그 의 아내 콘스탄체는 요양을 위해 자주 집을 비움으로써 모차르트를 제 마음대로 하도록 방치해두었다*

 

주요등장인물
돈 알폰소 [베이스] 

철학가
피오르딜리지 [소프라노]
 

페라라의 여자 영주
도라벨라 [메조소프라노]
 

피오르딜리지의 자매 
페란도 [테너]
 

도라벨라의 약혼자
굴리엘모 [바리톤]
 

피오르딜리지의 약혼자 
데스피나 [소프라노]
 

음모를 꾸미는 하녀

 




DIE ZAUBERFLÖTE - 마술피리

✍️2막의 독일오페라. 2시간 30분  🎵 1791년 9월 30일, 오스트리아 비엔나 프라이하우스 극장
⏳1791년 📖에마누엘 쉬카네더

 

「마술피리」는 모차르트가 특별히 일반 청중들을 위해서 쓴 유일한 오페라다. 이 작품은 복잡한 구성으로 되어있지만 매우 재미있다. 이 오페라는 마술피리와 벨, 동물들, 광대, 낭만적 연인들이 나오는 동화로서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덕, 사랑, 지혜를 장려하는 프리메이슨주의적 상징들이 가득차 있다. 이 오페라는 재미있고 외우기 쉬운 선율들로 잘 알려져 있고, 특히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높은  '바F" 음을 가진 밤의 여왕의 아리아는 무엇보다도 유명하다. 모차르트는 이 오페라를 쓰는 동안 「티토 왕의 자비」를 쓰고 있었고, 대부분의 시간은 「레퀴엠」을 쓰는 데 할애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모차르트는 매우 지쳐 있었고, 그는 「마술피리』 초연이 있은 지 9주 만에 사망했다.

 

* 바그너는 「마술피리」를 독일 오페라의 초석으로 여기고 이 작품은 '누구도 능가할 수 없이 거의 완벽한 대걸작' 이라고 평했으며, 사실상 이 양식을 더 이상 발전시키는 것을 불가능 하게 한 작품이라고 했다. *

 

 

주요 등장인물 
사라스트로 [베이스]

 신비주의의 왕 
타미노 [테너]
왕자 
밤의 여왕 [소프라노]
 

파미나의 무시무시한 어머니 
파미나 [소프라노]
 

갇혀 있는 공주 
파파게노 [바리톤]
 

새 잡는 사람 
파파게나 [소프라노]
 

파파게노의 연인
모노스타토스 [테너]
 

사라스트로를 시중드는 무어인 
사원의 연설자 [베이스]

3인의 숙녀들 소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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